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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고나서

[책] 조선성리학, 지식권력의 탄생(2010) '조선 패러다임 변천사 추적기'

by 구의동날다람쥐 2019. 1.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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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성리학, 지식권력의 탄생(2010)

김용헌 지음, 프로네시스



정말 오랜만에 이 책을 다시 꺼내들었다.

한국사능력시험을 준비하면서

사림, 붕당, 사화.. 등등

오랜 기억을 끄집어내려니

이 책으로 공부하던 때가 다시 떠오른다.


<조선성리학, 지식권력의 탄생>은 

대학교 2학년 때

수업교재로 쓴 책이다. 무려 저자직강!!

이제 막 새내기티를 벗고 2학년이 됐을 때여서

책을 쓴 사람이 직접 강의를 한다는 사실이 대단하게 느껴졌다.


고교시절에는 아무리 잘 가르치는 선생님이라도

자기가 직접 쓴 책으로 수업하는 일은 없었으니까.


당연한 얘기지만

무슨 왕 때 어떤 사화가 일어났는지

줄줄이 외는 것보단

이런 수업이 더 좋다.

그 때 더 치열하게 공부했더라면...!




원래는 3학년 수업인데

시간표를 짜다보니 어찌어찌 2학년이었던 내가 이 수업을 듣게 됐다.

수강생 10명 남짓에, 아마 인문대에서

가장 작은 강의실에서 수업을 들었다. 

2학년은 나밖에 없고 다들 3,4학년 선배들이라서 

우쭈쭈 받으면서 수업을 들었던 기억이 있다.


....


<조선성리학, 지식권력의 탄생>은

일단 디자인이 맘에 들었다.

사람으로 치면 책 표지가 첫인상이나 마찬가지니까.

외형으로 판단해선 안된다지만 당장 눈에 들어오는 것은 외형이 아닌가.


사실 그것보다는 서문에서 마음을 뺏겼다.

교수님의 개인적인 이야기인데,

읽자마자 "오~" 이런 게 한국철학하는 맛인가 내심 감탄했다.


서문은 기묘사화가 일어나던 날 밤 

조광조가 옥중에 갇혔을 때 얘기로 시작한다.

조광조를 따르던 이들이 중종에게 연명 상소를 올렸다.


상소에는 이런 얘기가 쓰여있었다고 한다.


"다만 우리 임금의 밝음만을 믿고 어리석은 충정을 다했습니다. 

여러 사람들의 시기를 받으면서도 다른 것은 생각지 않고 오직 우리 임금을

요순과 같은 임금으로 만들고자 했습니다. 이것이 어찌 일신을 위해 한 일이겠습니까?

하늘의 태양이 밝게 빛나고 있습니다. 다른 사특한 마음은 없었습니다"


이런 얘기야 사극에서도 들을 법한 얘기다.

재밌는 건 다음이다.




선생님께서 

어느 학회에서 이 글을 인용하면서 "정말 사특한 마음이 없었을까요?"라고

반문한 적이 있다고 한다.


'물론 여담이라는 조건을 달긴 했지만, 

조광조에게 사특한 마음이 있었다니 매우 불경스러운 발언이었다'

라고 이어지는데

학회에서 '불경스러운 발언'이 있을 수 있다는 것도 생경했다.

'아니나 다를까, 종합토론 간에 강펀치가 날아들었다.

"그것은 조광조의 사특한 마음이 아니라 발표자의 사특한 마음 아닙니까?"

한 평생 이 나라 유학 발전에 애쓰신 어느 원로 학자의 말씀이었다.

아주 매서웠다.

정곡을 찔렀기 때문이다.'


내가 한 말도 아닌데

'흠칫' 찔렸다.

나 역시 조광조에게 못해도 한 조각의 사특한 마음이 있었을 것이라고 

단정했으니까.


사람은 자기 경험을 남에게 투사해 다른 사람의 말과 행동을 이해하려고 한다.

그렇게 다른 사람의 말과 행동을 설명한다.


물론 선생님의 얘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사특한 마음이 없었을까요?'라는 발언은

어떤 의도가 담긴 발언이었다는 것이고,

의도는 곧 어떤 특정 목적을 향한 의지라는 것이다.

조광조의 도학정치 담론이 어떤 의지의 산물이라는 것을 말씀하고 싶었다고 쓰였다.


 내 생각이 여기까지 닿을 재간은 없지만

책은 이렇게 시작된다.


...


문묘 종사를 둘러싸고

사림들의 의지가 어떻게 작용했는지,

그리고 그 의지와 의도가 어떻게 '지식권력'으로 이어지는지 보여준다.

*문묘란 공자의 신주를 모셔놓고 제사 지내는 사당을 말한다.

문묘에 종사한다 것은 이 사당에 같이 모신다는 것이다.

문묘에 종사된다는 것은 공자와 같이 섬겨야 할 사람이라는 것이다.


 

'지식+권력'이다.

지식과 권력이 어떻게 하나가 될 수 있을까.


현대사회에서 지식있는 자가 권력을 갖을 수 있지만

그 지식은 조선시대의 '지식'도 아니고

권력도 조선시대의 '권력' 아니다.

책에서 말하는 권력은 국가권력이다.

현대사회에서 지식있는 사람이 어느정도의 권력을 가질 수는 있지만

알량한 권력이다. 그냥 좀 더 아는 척 할 수 있는 권력.

요즘 권력은 부에서 나온다.

자본권력이랄까.


여기서 중요한 것은 '지식'이다.

지식에 대한 해석이 요즘과는 많이 다른데

조선의 문화를 정통으로 받은 한국인인 나조차도

서양식 근대 사고방식에 익숙해서인지

책에서 말하는 '지식'이 낯설다.


여기서 지식은 '성리학'이라기보다 '도학'으로 표현된다.

요즘 지식이라고 하면

많이 아는 것에 가깝다. 전적으로 인식론적이다.

어떤 사람의 인격과는 무관하다.

많이 아는 것과 인성 사이에는 상관관계가 없다.


조선시대는 아니다.

'도학'은 많이 아느냐, 어떤 이론적 업적을 세웠느냐보다는

어떤 삶을 살았느냐가 더 중요하다. 실천에 방점이 있다.


가령 책에서 언급하는 정몽주.

우리가 기억하는 정몽주는 '단심가'로 상징되는 충절의 아이콘이다.

'임 향한 일편단심이야 가실 줄이 있으랴'


마지막 방점은 '탄생'이다.

지금 우리에게 '충신'으로 기억되는 정몽주는

조선 건국 당시에는 '간사한 계책'을 세운 간신이자 역적이었다.

간신 정몽주가 어떻게 충신이 되고 문묘에까지 종사됐을까.

탄생. 사림은 정몽주를 도학의 상징으로 만들었다.

이렇게 지식권력이 탄생하는 것이다.


...


정도전을 시작으로 정몽주 조광조 조식 이황 이이 성혼이

문묘에 종사되기까지 다양한 얘기를 다룬다.

그들의 삶에 방점이 찍힌 만큼

치부를 들추기도 한다. 사상검증 청문회!

특히 붕당정치가 극에 달했던 시기는 문묘에 올랐던 이가

다시 끌어내려지기도 한다.

 

문묘에 종사되는 것이 당대 권력의 상징이라면

이 권력의 계보가, 도학의 정통이 어떻게

형성되었는지 풀어냈다.

조선시대 패러다임 변천사 추적기랄까.


도학자들이 책 속의 지식이 아닌

의리의 실천을 중요시한 것처럼

살아있는 지식을 만날 수 있는 시간이다.


그리고 지금 여기 우리 시대에

만들어진 패러다임, 추구해야 할 가치는

어떤 권력의 어떤 의도로 만들어진 건지 생각해볼만한 기회를 준다.




여담인데,

우리들 사이에서 선생님을 부르는 별명이 '양반김'이었다.

아무리 급해도 절대 뛰는 법이 없는 양반의 느낌이랄까.


책 날개를 보고 약간 놀랐던 게

선생님이 당연히 성리학을 공부하신 줄 알았는데

실학 전공이셨다..! 의외!!

실학자 최한기에 대한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으셨다고...!오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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