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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고나서

[책] 사랑의 기술 '누구나 사랑을 하지만 아무나 사랑을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by 구의동날다람쥐 2019. 1.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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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 '여행'과 '관광'의 차이를 말하길,

어딘가를 다녀와서 내 삶이 떠나기 전과 같다면 관광이고,

떠나기 전과 후가 달라진다면 여행이라고 했다.


이런 정의를 따른다면 여행은 단지 물리적으로 새로운 공간을 경험하는 것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어떤 경험으로 삶에 조금이라도 변화가 생긴다면 그것이 곧 여행이다.

'사랑의 기술'은 나에게 여행과 같은 책이다. 



사는 게 재미없고, 무료할 때 읽은 책이다.

물론 관계에 대한 고민도 있었다.

고등학생 때 문학선생님께서 

'너희들 대학에 가서 남자친구 사귀기 전에 꼭 이 책을 읽어 봐!'라고 했던 기억이 떠오른다.


유명한 고전이기 때문에 여러 판본이 있는데

그 중에서 황문수 역의 문예출판사 책으로 골랐다.

두 권의 책을 비교했는데

책 첫 장의 번역투가 자연스러운 것으로 골랐다.



'사랑의 기술'은 정신분석학자이자 사회철학자인 에리히 프롬의 대표 저서다.

에리히 프롬은 고등학교 때 만났는데

'사랑의 기술'은 읽지 않았다.

제목이 유치해서. 이 생각은 완전히 틀렸다.


고등학교 때 처음 읽은 에리히 프롬 책은 '자유로부터의 도피'였다.

자유에 대한 인간의 양면성을 짚는데

이 책도 재미있게 읽었다. 



다시 '사랑의 기술'로 돌아가자면

이 책은 '사랑은 기술인가?'라는 질문으로 시작한다.

제목에서도 그렇고 '기술'이라는 단어가 우리말에서 주는 뉘앙스 때문에

한국인들에게는 조금 다르게 읽히는 것 같다.

영문제목처럼 여기서 기술은 테크닉(technic)이 아니라 아트(art)에 가깝다.

핵심은 저자가 이 단어를 선택한 이유다.

저자가 기술(혹은 예술)이라는 단어를 끌어온 것은

사랑은 흔히 말하는 '첫 눈에 반한다'는 말처럼

본능적으로, 배우지 않고도 우연한 기회만 있으면 얻어질 수 있는 게 아니라는 점이다.

저자는 사랑은 '받는' 게 아니라 '하는' 것이고,

배우고 연마해야 할 기술(예술)이라고 말한다.


책의 구성은 간단하다.

1. 사랑은 기술인가?

2. 사랑의 이론

3. 현대 서양 사회에서 사랑의 붕괴

4. 사랑의 실천

네 가지로 구성된다.


1. 사랑은 기술인가? 에서는 사랑의 잘못된 개념을 바로 잡는다.

왜 현대인들이 사랑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는가.

그건 사랑을 '능력'의 문제가 아닌 '대상'의 문제로 보고 때문이라는 것이다.

저자는 "'사랑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고, 

사랑할 또는 사랑받을 올바른 대상을 발견하기가 어려울 뿐이라고 사람들은 생각한다"고 말한다. 


연애나 결혼에서 누구나 한번쯤은

정말 이 사람이 나와 평생 함께할 사람인가?

운명의 상대인가?라고 생각하지만

프롬은 사랑은 누구를 사랑하느냐가 아니라

내가 사랑할 능력을 갖췄느냐가 중요하다고 말한다.


사랑이야말로 나와 맞는 사람을 만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는데

통념을 완전히 깨부수는 시각이다.

물론 대상도 중요하지만 일단 내가 사랑을 할 수 있는 사람이냐는 거다.

누구나 사랑을 하지만

아무나 사랑을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말 아닐까.


많은 사람이 사랑을 한다고 생각하지만

사람마다 초보적인 사랑, 고차원적 사랑 등

사랑의 스펙트럼을 얼마나 경험하느냐는 다르다는 말로도 들린다. 



2. 사랑의 이론에서는

부모 자식 사이의 사랑,

형제간의 사랑,

자기 자신에 대한 사랑 등

다양한 사랑의 모습을 파헤친다.

본격적으로 이론을 다루는 부분이기 때문에

약간 딱딱하게 느껴질 수 있다.


조금 어려운 말로 프롬은

사랑이 인간의 실존 문제에 대한 해답이라고 말한다.

성숙한 사랑이란, '자신의 통합성, 곧 개성을 유지하는 상태에서 합일' 이라고 설명한다.


3. 현대 서양사회에서 사랑의 붕괴는

현대사회에서 사랑이 어떤 모습으로 나타나고 있는지 다룬다.

현대 서양사회라고 하지만 곧 자본주의를 말하는 것이기 때문에

우리 사회에서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인상적이었던 게 

결혼도 하나의 '팀'이 돼버렸다는 점이다.

연인이 아니라 '팀'으로서

서로 고독이라는 감정을 피하기 위해 결혼을 택한다는 것이다.


자본주의는 원활하게 집단적으로 협력하는 사람을 원하고,

그래서 사람들은 점점 표준화된다는 것이다.

취미마저도 표준화되는 '자동기계'인 자본주의 인간은

사랑을 할 수 없다는 게 프롬의 분석이다.

사랑을 할 수 없는 자동기계는 퍼스낼리티라는 상품을 교환하기 위해,

고난의 피난처로서 결혼을 택한다는 게 기억에 남는다. 

 


무엇보다 뇌리에 박혔던 건

4. 사랑의 실천 파트다.

프롬 자신도 첫 부분에서 밝히듯이

이론에 대해선 말할 수 있어도

실천은 말 그대로 실제 세계에서 행하는 것이기 때문에

글로써 많은 것을 알려줄 수 없다고 인정한다.


사랑이 기술이라면, 훈련이 필요한데

그 훈련이 '정신 집중'이라고 말한다.

"현대인은 일하지 않을 떄에는 게을리 지내거나 빈둥거리고 싶어하며, 더 좋은 말을 쓴다면

'긴장을 풀고' 싶어한다"는 프롬은 

"게으름을 피우려는 이러한 소망은 주로 생활의 규격화에 대한 반발이다.

현대인은 자기 자신의 목적을 위해, 자기 나름의 것이 아니라 일의 리듬에 의해

그에게 지시된 방식으로 어쩔 수 없이 하루에 여덟 시간씩 

자기의 에너지를 사용해야 하기 때문에 반항"한다고 설명한다.


우리는 소비에 익숙하다.

뭘 자꾸 집어넣는데만 익숙하다.

아침에 눈 떠서 핸드폰을 보며 이것저것 쓸데없는 정보를 계속 집어넣고

흘려보내고, 음악을 넣고, 음식물을 넣고, 술을 넣고, 지식을 넣고, 영상을 넣고..

이것저것 계속 집어넣지만 채워지지 않는다.


프롬은 정신 집중을 배우는 가장 중요한 단계로

"독서를 하거나 라디오를 듣거나 담배를 피우거나 술을 마시지 않고

홀로 있는 것을 배우는 것"을 말한다.

현대인에게 이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나 스스로도 아침에 눈 떠서 잠자리에 들 때까지,

심지어 화장실에 갈 때도 핸드폰을 놓지 못한다.


그리고 나에게 '변화'를 준 마지막 부분이

'합리적 신앙'에 관한 것이다.

'비합리적 신앙'이 불합리한 권위에 대하 복종이라면

'합리적 신앙'은 "어떤 것에 대한 믿음이 아니라 확신이 갖는 확실성과 견고성"이다.


인상 깊었던 구절을 일기장에 따로 적었는데

"합리적 사고는 대다수 사람들의 의견에도  '불구하고' 

자기 자신의 생산적 관찰과 사고에 기초를 둔 독립적 확신에 뿌리박고 있다"


"합리적 신앙의 기반은 '생산성'이다.

... 현존하는 힘을 믿는다는 것은 아직 실현되지 않은 가능성의 성장을 믿지 않는 것과 같다"


"신앙을 가지려면 '용기' 곧 위험을 무릅쓰는 능력, 고통과 실망조차도 

받아들이려는 준비가 필요하다. 

생활의 일차적 조건으로서 안전과 안정을 추구하는 자는 신앙을 가질 수 없다"는

부분이다.


사랑하는 능력을 키우기 위해서는

나 자신을 먼저 세워야 한다.

내 퍼스널리티에 대한 생산적 관찰, 사고에 기초를 둔 독립적 확신이 있을 때

사랑을 할 수 있게 된다는 말이다.


중요한 건 안정을 추구하는 자에게 신앙은 없다는 것이다.


궁극적으로 사랑에 대해 말하고 있지만

결국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신을 찾고 지키는 것이

반드시 선행돼야 한다는 점이 핵심이다. 

그게 곧 사랑의 기술을 연마하는 방법이다.


개인을 둘러싼 수많은 미디어가 이와 반대로 가고 있는데

자신을 지키는 일이 얼마나 힘들까.

훈련, 연마가 필요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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