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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고나서

[장강명 에세이] 5년 만에 신혼여행_한겨레출판

by 구의동날다람쥐 2023. 9.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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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진정보도서관을 가다

집이 너무 좋아서, 집에 있는 게 정말 좋아서 나오고 싶지 않았다. 빗방울이 떨어지는 날엔 더더욱 집 밖을 나가기 싫었는데, 이 날은 비가 오는 날이었다. 그래도 이렇게 있다간 쇼파에 늘러붙어버릴 것만 같아 몸은 단정히 하고 밖을 나섰다. 카카오맵으로 연신 '길찾기' 버튼을 누르면서 광진정보도서관으로 갈 수 있는 다양한 루트를 확인했다.  

이 날은 비가 왔다. 비가 쏟아지진 않고, 추적추적 내리기만 했다.

장강명의 도전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시간의 흐름에 따라 쓰인 '신혼여행'보다는 '5년 만에'라는 문구에 더 호기심이 생겼다. 이 부분 때문에 책장을 더 넘겼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1년 반만의 시간을 달라고 말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10년 다닌 직장을 그만두고 아무것도 하지 않고 소설만 쓰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다. 

나는 방에 틀어박혀 아무것도 하지 않고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HJ에게는 딱 1년 반만 시간을 달라고 부탁했다.
그 뒤로 만 1년 동안 장편소설을 다섯 편 썼지만, 단 한 권도 출간되지 않았다. 돈은 30만원 쯤 벌었다.

만 1년이 지나도 이렇다 할 성과가 없을 때에도 그 선택을 밀고 나가는 것은 더더욱 어려운 일이다. 큰 결심이지만 만 1년이 지나 주변 사람들과 가까운 사람들마저 '이제 그 정도 했으면 됐지 않아?' 라는 생각이 들 때에도 견뎠다.

 내가 과연 성공할 수 있을까?
내가 옳은 선택을 한 걸까?

이렇게 사는 게 맞는 걸까?
마흔이 되어서까지 그런 걸 고민한다는 게 이상했다.

몇 장 더 넘기고 나서 쓰인 글에는 더욱 이끌렸는데, 마치 나에게 하는 말처럼 느껴졌다.

전업 작가 한다고 설치다 돈이 떨어져
이름 없는 주간지 기자로 재취업하거나 홍보 업계로 빠졌을 수도 있다.
외국에 있는 여자친구를 기다리다 배신당하고 혼기를 놓쳤을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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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말이 정말 나에게 하는 말 같다. 서른 한 살, 지금 이 시점. 뭔가 멈춰야 할 것 같아서 위험을 무릅썼다. 근데 정말 뭘 해야 할지 모르겠다. 마흔이 아니라 서른에 고민한다고 해서 그걸 위안으로 삼아야 할까. 아니다. 장강명의 상황보다도 더 안 좋은 것 같다. 정확히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 회사를 그만두기 전 등단을 한 것도 아니다. 등단을 한 장강명도 1년을 별다른 성과 없이 보냈다.

하지만 부모님이 원하던 대로 살아도 시시한 삶이었을 건 분명하다.
모든 게 거짓말처럼 잘 풀렸다면, 지금쯤 건설회사 과장이나 차장쯤 돼 있을 것 같다.

선으로 만난 여자와 결혼해 아이를 하나나 둘쯤 가졌을지도 모르겠다.
내 목숨만큼 아내를 사랑한다는 확신도 없고, 내가 하는 일이 정말 하고 싶었던 일이라는 생각도 안 들테지.
그럴싸한 취미 한둘을 누리면서, 아이들이랑 캠핑이라도 가서, 좋은 음악을 듣거나 술을 마시면서
'이만하면 내 인생 나쁘지 않잖아?'라고 생각한다.
····
그러나 심지어 그 삶조차 그리 안전하지 않다.
내가 다니던 건설회사는 이후에 여러 비리 의혹에 휘말렸다.
그 회사에 남았더라면, 나도 그 비리에 연루됐을 수도 있다.
아내가 바람을 피울 수도 있다.
몸이 아픈 아이를 낳을 수도 있다.
····
인생은 위험하다.
'안전한 삶'에 대한 기대는 망상이다.

맞다. 인생은 위험하고 어떻게 될지 모른다. 하지만 한편으로, 그는 비리에 연루되지도 않고, 바람이라곤 상상해 본 적도 없는 지고지순한 여자를 만나 아이를 키우며 잘 살았을지도 모른다. 건강하고 성실한 아이를 낳아 키웠을지도 모른다. 그 평행우주에서 장강명은 어떻게 살았을지 아무도 모른다. 

그러나 인생에는, 부잣집에서 태어났건 아니건 간에,
그리고 부모가 뭐라 하건 간에, 위험을 무릅쓰고 모험을 벌여야 할 때가 반드시 찾아온다.

그렇지 않다면 그건 인생이 아니다.
그건 사는게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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